/ 우리 안에 불성이 깨어났을때

우리 안에 불성이 깨어났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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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안에 잠자고 있는 참 나 (불성) 가 깨어날때 !

말을 글을 찾아 방황하고 괴로워하며 삶의 이정표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기웃 헤매고 다녔다.
내 존재(실존)의 근원을 일깨워 주는 말과 글.
나를 흔들어 어리석음 에서 깨워줄수 있는 말과 글.
백마타고 달려온 왕자가 100년 동안 잠들어 있는 공주를 입맞춤으로 깨우듯이.
내 안에 고이 잠들어 있는 무언가(참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줄 기적 같은 말과 글 을 찾아 헤맸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
나는 어딜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 인생이 왜 슬픈가 ?
왜 나는  괴로운가 ?
도대체 괴로움의 정체와 실체는 무엇인가 ?
어찌하여 나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전전긍긍 하는 인생을 사는가 ?

어느날.
어릴적 고향에서 팽이 치던 모습을 떠올리던중에 불현듯이 뇌리를 스치는 해답이 날아왔다.
그래.
어쩌면 우리네 삶이란 중심잡기 게임이야 !
중심이 조금만 옮겨가도 팽이는 금방 쓰러질듯 위기에 처하게 되지 !
나를 포함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팽팽 잘 돌지 못하는것 같다.
이리비틀 저리비틀 대는것은 ?

인생의 답을.
행복의 답을.
내 삶의 답을.
내 안(참 나)에서 찾지 못하고 외부에서 외부의 무언가(돈과 재물.권력.세상적인 부귀영화 좋은차 좋은집.어리석은  철학 등등)를 쫒아다니느라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 내 안에 깃들어 있는 나 만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이다.

나의 중심에 잠재 되어 있는 참 나(불성 또는  부처)로 부터 우러나온 삶을 살지 못하고.
이리저리 여기저기 내 마음 바깥으로 치닫고 끌려 다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태풍의눈~같은 고요의 지대(참나)가 있다.
시간 이전부터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참 나 가 있다.

그것은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다.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바로 (공). 부처(불성 또는 참나) 이다.
바로.
어리석음과 탐욕.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다 버리고 텅 비워진 마음이다.

예수께서도 산상수훈 에서.
심령이 가난한자는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자는 하나님을 볼것이다.라고 하셨다.
무슨 말 일까 ?
바로.텅 비워진 마음이다.
어리석음도 탐욕도.아집과독선도.
다 버려져 텅 비워져 있는 맑고 청정하고 푸르고 깨끗한 마음이다.

바깥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그 지대만은 바람처럼 숨을 죽이고.
수정같이 맑고 청정하며.
하늘 처럼 푸르고 태평하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에게나 그런 중심지대가 있건만.
그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채 바깥에서만 맴도는 인생은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고 차일수 밖에 없다.

내 중심으로 진입하여 중심을 사는 인생에는 더 이상의 갈등이나 번뇌와 고뇌 불안과 초조 괴로움 검불 같은 것이 붙을 자리가 없다.
왜냐하면 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텅 비워있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별에 왔다 갔지만.내 마음 바깥에서 일평생 나를 이끌고 다니고 나의 겉거죽에서 일어나는 온갖 비바람과 소란을 장악하고 다스릴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살다간 인생은 실로 드물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깨달으신 선각자님들.
성인들.
동서양의 철학자들.
동서양의 과학자들.
동서양의 인문학자들.
께서 공부하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으신 지식.
수행을 통해 깨달으신 보석 같은 지혜의 가르침이 있다.
내 마음 바깥 겉 거죽의 풍경 속에서는 온갖 비바람과 광풍이 몰아치는데도 태연히 잠 잘수 있는 사람.
부평초처럼 흔들리는 인생들에게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신성의 씨알머리(참나)를 깨우쳐 가리켜 보여주으로써 .

어느날 갑자기 진정하고 참다운 자기자신의 존중의 길을 벼락 치듯이 깨닫게 해줄수 있는 사람.
잠시 잠깐의 갈증해소 음료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내 영혼에게 생수를 마시게 해줄 사람....
어느날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해답이 전광석화와도 같이 떠올랐다.

제행무상 ! 제법무아 ! 일체개고 !
이 세상 아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것은 고정되어 멈춰져 있는 것은 존재 하지 않는다.
원인과 조건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여 간다.
10년전의 내 마음 내 모습도 역시 변해왔다.
나의 겉 모습과
나의 속사람은 지금의 나도 아니고.
10년전의 나도 아니고.
10년후의 나도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존재(실존)하는 나는 어뗜 모습인가 ?
이렇듯이.
고정되어 있는 나 라는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고정되어져 있는 (나)가 존재 하지도 않고 계속 변해 가는데.
나 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

우리는 일평생 가짜 나 에게 끌려다니며 괴로움과 갈등.불안과 조조.두려움 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이 가짜 내가  망상.몽상.환상.상상.허상. 이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지금  나의  생각  모습이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이런 현상을 통찰하시고.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서 벗어나라고  하신 것 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므로 괴로움에 갇혀산다.
이 세가지 가르침은 내 가슴에 불을 지른 방화범임이 분명했지만.
내가 이 땅에 온것은 평화를 주러 온줄 아느냐 ?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한 예수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누구보다도 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내 가슴에 불을 놓아준데 대해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불(태양)은 생명의 원천이다.
물(바다)이나 흙(대지)도 불이 없으면 능히 생성할수 없고 기를수 없다. 바위(금)가 불을 만나면 온갖 유용한 금속으로 제련되어 쓰임새가 넓어진다.
초목도 불기운을 맞아들여야 비로소 자기 안의 생명을 싹틔우고 키울수 있다.

불의 세례를 가장 적게 받는 겨울이면 움츠러들고.
태양의 빛과 열기를 실어나르는 햇살 병정들이 활약을 시작하는 봄이 되어야 씨앗은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싹을 틔운다.
봄기운이 작열하는 여름에는 온 세상이 생명의 절정을 노래한다.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신성의 씨앗(참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불을 질러주어야 한다.
하다못해 부싯돌이라도 그어주어야 한다.
우리 안에 아무리 위대한 신성의 씨앗이 있어도 불기운을 만나지 못하면 발아할 기회를 받지 못한다.
신성의 씨앗이 발아 하지 못한채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면 우리는 저마다 어러석음과 괴로움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노예의 운명을 면치 못한다.
붙잡아 매는 이 아무도 없건만 스스로 짊어진 무거운 삶의 짐 (십자가) 의 무게 때문에 날아다니는 자유는 꿈도 꾸지 못한채 무거운 족쇄를 질질 끌고 다니는 내 삶은 이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자유는 하루아침에 날개를 펼치지 못한다.

일개 어리석음 (무지와 무명)과 탐욕 (더 가지려는 마음.더 누리려는 마음.더 즐기려는 마음) 그리고 아집과 독선.교만의 노예로 살아왔던 과거의 (습 또는 업)은 질기고 질겨서 날아오르려는 자의 발목을 붙잡곤 한다.
날개가 있더라도 온전히 성숙하지 상태에서는 끊임없이 나는 연습을 해야한다.

날개죽지에 근육이 붙어야 한다
.왜 그래 ?
넌 본래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 !
네 자신을 구박하지마 !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방황하는 나를 붙잡아 일으켜주는 그 가르침 덕분에 나는 비로소 내 안에 있는.진정으로 소중한 내 존재의 씨앗을 발아시킬 기회를 갖게 되었다.
뭇별을 서로서로 돌게하는 우주의 힘이.

지구상에만도 1000만종 이상의 생명체를 창조하여 뛰놀게  한 그 힘이.
아침이면 나팔꽃을 피게하고 저녁이면 지게  하는 그 힘이. 우리안에도 깃들어 있음을 일깨우는 금싸라기 같은 그 가르침을 함께 나누는 기쁨을 갖고 싶다.

저마다의 내면에 간직된 신성의 씨알머리에 부싯돌이 그어져서 불이 켜지는 소리.
잠자던 씨앗이 눈에 불을 켜고 발아 하는 소리.
오직 그 소리를 듣고 싶은 바람뿐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 입니다...

  송경섭
>출처 - <인문학> 中에서-
>이미지 출처  - 무료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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